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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도피안사_이준규] 알고보면 다른 철원의 역사

등록일 2026-10-12 작성자 이준규 조회 33 카테고리 1조 도피안사

서울을 떠나 철원으로 향하는 버스 창밖으로 계절의 풍경이 옮겨가는 동안, 머릿속의 철원은 그저 '북방 한계선 근처의 안보 관광지'이자 차가운 민통선의 이미지로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1박 2일간 도피안사, 노동당사, 승일교 등 철원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접한 철원의 얼굴은 단순한 안보 여행지가 아닌,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흔과 그 속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숨결이었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곳은 도피안사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는 대적광전이었다. 신라 경문왕 시절, 신라말의 혼란 속에서 거친 철(鐵)로 불상을 조작해 민중의 안식처를 세우고자 했던 신도들의 염원이 담긴 곳이다. 백마고지 전투를 비롯해 6·25 전쟁의 가장 참혹한 포화가 쏟아졌던 철원 땅에서, 도피안사 역시 잿더미가 되는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거센 포화와 화염 속에서도 철불은 온전히 형태를 유지한 채 땅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되었다. 매끄럽고 화려한 금동불이 아닌, 검고 투박한 철불의 미소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민중의 질긴 생명력과 평화에 대한 소망처럼 다가왔다.

이어 찾아간 철원 노동당사와 승일교는 분단과 전쟁이 남긴 상흔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 콘크리트 골조만 앙상하게 남은 노동당사 건물 표면에는 6·25 전쟁 당시 수많은 총탄과 포탄 파편이 남긴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광복 직후 북한 정권하에서 강제 노역과 수탈의 장소였고, 전쟁 중에는 격전지였던 이곳은 분단이라는 역사적 비극이 만들어낸 냉혹한 현장이었다.

바로 근처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승일교 역시 남북 분단의 아픔을 비극적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남북 합작이라는 이름 뒤에는, 절반은 북한의 토목 기술과 주민들의 강제 노역으로, 나머지 절반은 전쟁 후 남한의 기술로 완공된 비극적인 조립의 역사가 숨어있었다. 다리의 아치 모양과 교각 양식이 좌우 서로 다르게 이어진 모습을 바라보며, 한반도가 겪어야 했던 허리가 끊어진 고통과 그 중간에 끼어 상처 입었던 민중들의 삶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동안 교과서나 뉴스 속에서 접했던 철원의 역사는 단편적인 '분단과 안보'라는 키워드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거친 철불의 피부를 마주하고, 총탄 자국이 패인 시멘트 벽을 보며 느낀 철원은 전쟁의 잔재이자 동시에 새로운 평화를 위한 부의 관광지였다. 치열했던 비극의 상흔 위에서 오늘날 고석정의 꽃밭과 한탄강의 풍경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듯, 아픈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지는 책임이자 의미임을 깨닫는 소중한 여정이 되었다.